자료실/도시건축2010.08.31 23:30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안녕하십니까?


또 공모전 시비다. 이번엔 그 대상이 국가대표 격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다. 박물관이라는 프로젝트 자체의 속성이나 장소성에서나 의미가 큰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공모전 시시비비의 속사정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공교롭게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얘기를 계속 들을 수 있었다. 이 두 공모전이 계속 비교되는 것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주무 부처에서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미술관과 박물관이라는 공공성 강한 문화시설이 사연 많은 곳에 들어선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하나는 국군기무사령부가 쓰던 곳이고, 다른 하나는 곧 이전할 문화체육관광부 건물이다. 그리고 하나는 기존 도시구조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다른 하나는 국가상징거리1번지, 미대사관 옆에 들어선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존의 구조체를 두고 리모델링 하는 설계 방향도 유사하다.

비교되는 차이라면 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위치 선정에서 15년이 넘게 미술계와 문화계가 언론 플레이를 통해 실현시킨 프로젝트라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현 정부 들어서 급속하게 부각된 프로젝트라 과정이나 배경이 현대미술관 서울관 만큼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현대미술관 서울관이 2차 현상설계를 앞두고 조선시대 종친부 유구 발굴로 건립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반해, 역사박물관은 2012년 말에 완공을 목표로 2차 턴키 공모에 돌입하였다. 이 점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아이디어 공모 결과에 대한 시비와 함께 계속 비교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공모전 패자들의 묵언을 미덕삼으라는 말도 쉽지 않으며, 석연치 않은 구석이라 생각되는 부분이다.

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지난 와이드 3/4월호에서 아이디어 공모의 결과와 과정을 집중 조명한 바 있으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당선작(우수작)()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서해천,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이필훈, 에이엔유디자인그룹() 오성제, ()나우동인건축사사무소 외 2개사 박병욱, ()가아건축사사무소 강인철, 5개 팀이 선정되었으며, 상금과 함께 2차 공모인 설계시공 일괄입찰에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에이디에프도시건축건축사사무소 외 2개 사 김광선, ()창조종합건축사사무소 외 1개사 김병현, ()종합건축사사무소 디자인캠프문박디엠피 김혁, ()시아플랜건축사사무소 조주환, 예주건축사사무소 김선재가 가작 5개 팀으로 지난 423일 발표되었다.

엠바고,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공모전 시비의 단초는 1차 아이디어(건축개념설계) 공모 당선작을 비롯한, 수상작 일체가 공개되지 않고 있는 데에 있다. 심사 기준과 심사 내용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없으니, 당선한 이유가 무엇이고  낙선한 이유가 무엇인지, 왜 더 우수한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박물관 건립추진단에서는 최종 설계안이 선정될 때까지는 아이디어 공모의 당선작 공개는 어렵다는 내용을 몇 차례 확인시켰다. 계획대로라면 9월 중순에서야 아이디어 공모 당선작 공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원칙은 당선작 5개 팀 합의에 의한 것으로, 아이디어를 모방할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여 공모전의 공정성을 기한다는 설명을 덧부쳤다.

사실 이 점은 납득이 어렵다. ‘당선안의 개념 및 형상 변경 불가라는 발주처가 만든 공모 지침을 스스로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하며, 취재원을 만나는 과정에서 다른 팀의 당선작을 상당 부분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작 설계자들은 국가적인 프로젝트의 당선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설계자의 이미지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 특히 역사박물관과 같이 공공적이고 문화적인 성격이 강한 프로젝트는 앞으로 그 시설을 이용할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아이디어 공모에 참여한 한 사무소는 다른 곳에 이유를 두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턴키 공모가 진행되면, 설계안의 보안 유지는 관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계 아이디어를 포함하는 현상 설계가 스키메틱 디자인이라면, 턴키 설계는 적정 공사비를 제시해야 하는 공사비 입찰입니다. 상대 팀의 안을 분석해서 공사비를 예측하는 것이, 가격 심사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하나의 방편이 되기 때문이죠. 특히 설계안의 변별력이 크지 않고 가격 배점이 높거나 저가입찰이라면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설계안의 보안 유지는 공모 방식에 기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면 왜 탐탁치 않은 이유로 보안까지 유지하면서 좋은 디자인을 뽑기에 적절하지도 못하다는 턴키 방식인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내려진 엠바고에 다른 연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공공건축물의 턴키 설계
,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실 턴키 방식이 좋은 건물을 짓는 방법은 아닐 수 있지만
, 시장의 구도에서 보면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규모가 큰 사무소에는 턴키 설계만을 전담 하는 부서가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규모가 작은 곳도 기본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나름대로 턴키 방식에 협력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설계자들은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좋은 안을 뽑기 위해 턴키가 좋은 방법이 아님에는 분명합니다. 현상 설계를 하면 좋지만, 낙선하면 설계자는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적게는 CG투시도 몇 컷 뽑아내는 데에 2천 만원, PF 경우 동영상이라도 들어간다면 1억 넘는 비용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턴키 공모에서는 당선에 상관없이 기간 동안 투여되었던 실제 비용과 인건비를 차감하더라도,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비용이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 턴키 공모에서 총 설계비가 20억일 때, 건설사와 컨소시엄을 이루어 설계부터 턴키까지 진행하는 경우는 6~10억 정도가 건설사로부터 먼저 지불되고, 당선 후 나머지를 지불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설계사무소에서는 이윤이 발생하는 수주 프로젝트로 턴키 설계를 취급하는 것이죠.”

분명 턴키 설계가 복수의 설계사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일단 턴키 설계가 시작되면, 보통 주어지는 60일 내외의 기간에 시공성이나 공사 금액을 책정할 수 있는 실시설계 직전까지 도면이 나와야 한다. 그 만큼 맨파워와 조직력이 갖춰진 사무소가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작은 설계사무소에서 단독으로 하기는 힘들다는 얘기이다. 오히려 합사나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러면서 건설사나 협력업체에서도 누구나 다 만족하는, 아주 나쁘지 않는 보편적인 안이 선정되고, 턴키 설계는 오히려 발전소나 플랜트, 교각 설계에서는 환영 받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턴키 설계 자체의 문제점 보다는 선정된 역사박물관의 건축 아이디어가 제대로 구현될 것인가와 역사박물관이 턴키 설계 방식으로 진행하기에 적합한 건물인가 하는 것이 남는다. 먼저 역사박물관의 심사위원장이자 건립위원인 김원(광장건축 대표)은 공모 방식에 변경이 있었음을 전했다. “역사박물관 건립위원이 모두 27명인데, 그 중에 건축과 관련된 사람은 저 혼자입니다. 물론 건립위원의 구성은 처음과 달리 대폭 축소된 것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책임이 더 막중해졌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아이디어 공모가 진행되었지만,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애초에 턴키 공모로 진행할 것이 결정돼 있었어요. 사업의 주무 부처인 문화부의 입장은 설계보다는 날짜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조달청 턴키 방식을 채택한 것이죠. 건립 위원으로서 반대할 수 밖에 없어요. 아이디어 공모는 논의 과정에서 바뀐 것입니다. 좋은 건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방식이나 방법이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턴키는 국가 프로젝트, 미술관, 박물관 문화시설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방식입니다.”

역사와 문화적 특성이 강한 건축물, 특히 공공건축물에서는 건축주라는 대상이 좀더 다양해진다. 때문에 의사 결정 단계가 복잡하고 그만큼 잡음도 많기 마련이다.  그리고 시민 사회가 확장되면서 공공 건축물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지만 설계안을 접하는 과정이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발주 방식으로 차단된다면 분명 적합한 방식은 아닌 것이다. 사업을 빨리 추진하기 어려운 일련의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발주처의 생각이나 의지를 실현하기에는 턴키가 적합한 방식이지만, 시민사회를 위한 공공건축물로서는 적합치 않은 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역사박물관은 공모 자체로도 자가당착의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나는 당선작 5개 팀만으로 턴키 설계 공모가 진행되면 공정거래법 위반을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달청은 1차 공모에 작품 제출한 41개 팀을 대상으로 하여, 당선작 5개에는 가산점을 주어 형평을 고려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당선된 아이디어가 다시 현상설계 공개 공모에 응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더러, 공모 방식을 바꾼다면 당선팀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당선 가산점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5개 당선작 중에 하나가 최종안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같은 방식으로 앞서 진행된 광화문 광장1차 아이디어 공모 당선된 안들이 가산점을 받고도 2차 턴키 설계 공모에서는 시공성과 가격경쟁력에서 우위에 있던 전혀 다른 안이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심사위원이다. 턴키 설계 공모의 심사위원은 조달청에서 새롭게 구성하는데, 턴키 심사의 폐단과 불공정성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박물관에서는 변별력 없는 심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디어 공모 자체가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선작의 내용을 알 수 없을 뿐더러, 아이디어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거나 전혀 다른 안을 제출하는 파울을 범하더라도 이를 제어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건립위원회 측은 5개 당선작을 대상으로 턴키 대신 현상설계 공모로 최종안을 뽑은 후, 턴키 공사 입찰과 1,2차 설계 심사위원을 동일하게 구성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그리고 현재 조달청 공고는 1차 당선작에 가산점을 주는 일반 경쟁으로, 자격심사 후 턴키 입찰 방식으로 조정한 상태다. 당선작 5개 팀의 사전동의를 통해 변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들어설 문화체육관광부 전경. 사진제공 : 문화체육관광부

건축, 사회로부터 이탈하는 방법

그런데 빨리 지어야 하는 것이 단지 사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행정적 편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현대사박물관'에서 국립대한민국관'으로, 그리고 지금의 이름은 바뀌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의도는 더욱 노골적이다. 현 정부가 역사박물관 건립에 앞서 건국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연원을 1948년으로 규정한 바 있고, ‘국립대한민국관에 들어가는 좌익 독립운동가들을 배제하겠다는 의도라는 지적과 의견도 분분했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명기 돼 있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정부가 부정하면서까지 잃어버린 10년이니, 좌편향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공언을 한 것도 무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립위원 김원은 역사박물관에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제는 제가 독립기념관에 건립위원으로 참여했을 때와 상황이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독립기념관은 현상 설계로 진행되었는데, 건축설계의 저작권 개념이나 심사위원 사전 공개, 이전까지 흔했던 현상 설계 운영상의 문제점과 전횡을 바로 잡았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립기념관은 신군부 정권의 정통성을 알리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독립기념관이 6개의 전시관에 수.당나라 때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독립 투쟁의 역사를 담고, 마지막 제 7관에다 5공화국 관을 구성하여 입구에 전두환 대통령의 거대한 초상화를 걸었죠. 군사 쿠데타의 스토리를 전체 독립 투쟁 역사의 일부로 편입하는 것, 즉 정권의 정통성, 당위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독립기념관의 아이디어였어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역시 역사 바로 잡기라는 명분으로 고안된 건축물입니다. 역사박물관을 만들어서 국민들한테 바로 된 역사를 보여주자는 것이지요. 대한민국이 태동한 이후부터, 왜 우리 나라가 오늘날 이렇게 잘 살게 되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며, 남남 이념 갈등의 논쟁을 모두 없애고, 아주 긍정적인 현재와 미래만을 가지고도 대한민국의 잠재력을 살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당연히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점입니다.“

사실 역사박물관의 현대사 전시는 일제강점기 역사가 있는 독립기념관, 한국전쟁을 중심의 현대사가 있는 전쟁박물관, 그리고 서울역사박물관의 서울시사와도 상당 부분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역사박물관이 기획되면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별도로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에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전혀 논의가 일지 않았던 부분이다. 지하 터파기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나 문화부 건물이 보존 가치가 있어 리모델링으로 설계 방향이 결정되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당시 미국 설계사가 설계하고 전형적인 패스트 트랙 공법으로 1961년에 시공된 것일 뿐이다. 더욱이 무량판 구조(플랫 슬래브 구조)로 천장고가 낮아, 박물관으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도 않은 건물이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산업화를 촉발시킨 경제기획원이 과거에 사용했던 건물이라는 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 정도다.

물론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지 못한 것이 발주 방식이나 기획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영국에서 런던의 대규모 재개발계획이 무산된 사건이 사회적인 이슈가 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처드 로저스의 개발 계획이 런던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며 못마땅해 하던 왕세자가 개발회사에 압력을 넣어 건축가를 교체하고 계획을 변경시킨 것에 대해, 영국 왕립건축가협회는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권력 개입이라 즉각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그리고 법원은 왕세자의 개입이 부적절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권력이나 정치가 공공건축물의 프로세스에 개입하는 방식은 결코 좋은 건축물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찰스 왕세자는 있지만, 전문가집단이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와이드 2010 7/8월호, pp.114-116



Posted by 정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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